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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 금단의 사랑이야기 <두번째>

깊은샘1 2007. 9. 19. 23:39

누구나 한 번쯤 젊은 시절엔 사랑에 대해 고뇌하고 아파했을 것이다. 나는 왜 남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에 온 몸의 촉수가 일어서며 가슴아리는 열정을 느낄까!!  

 

중세 최대의 연애 이야기 :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援щℓ *Heloise & Abelard: ?⑤��?몄�쇰�??�濡�??Biography*

                          (사진은 yes24와 구글에서)

`2000년 뉴욕타임즈가 12세기에 21세기의 삶을 살다간 여인이라며 ‘나의 밀레니엄의 전형‘ 4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던 「엘로이즈」

Heloise & Abelard: Love Hurts

 

 

 

 

 

 

 

 

 

 

 

 

 

 

 

(사진은 아마존에서)

사랑의 경건함과 인간이 가진 진실, 그리고 끝없는 고뇌. 사랑은 인간을 어디까지 변모하게 할까?

  
서양 중세 스콜라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아벨라르(1079~1142). 파리대학 교수를 지내고 노트르담 성당 참사회원이었던 그는 동료 참사회원인 퓔베르의 소개로 나이 서른아홉에 퓔베르의 조카 엘로이즈(1101~1164)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엘로이즈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철학 문학에도 뛰어난 미모의 열 일곱 살 난 처녀였다. 퓔베르는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그녀의 교육에 열성적이어서 그 당시 지성과 순결로 뛰어난 평판을 받고 있던 아벨라르에게 그녀를 맡겼지만 학문은 뒷전이고 사랑에 빠져 헤어날 줄 몰랐다.

 
독신이어야 하는 참사회의 규율도 버리고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 빠져들었고 두 사람은 22년이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열정에 휘말렸다. 이 사실을 알게된 퓔베르가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했을 때 이미 엘로이즈는 임신중이었다.  퓔베르는 미치광이처럼 괴로워 했고 아벨라르는 그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가 요구하는 어떠한 속죄 행위라도 다 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그에게 엘로이즈와의 결혼 ( 단, 아벨라르의 명예를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의 비밀결혼)을 제안한다.

 

결혼을 결심한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유는 결혼이 위험하다는 것과 아벨라르에게 불명예스럽다는 것 때문에.

그녀는 어떤 속죄행위도 퓔베르를 만족시키지 못랄 것이라고 단언하고 아벨라르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서로의 체면을 훼손시키는 결혼을 반대했지만  엘로이즈는 아들을 낳았고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아벨라르의 장래를 위해 한 집에서 살지 못하고 남의 눈을 피해 만나곤 했다.

하지만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고,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퓔베르의 집에서 몰래 데리고 나온다.


아벨라르의 권유로 엘로이즈가 수녀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퓔베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밤중에 아벨라르의 남성을 거세해 버린다.  나이 마흔에 거세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 아벨라르 역시 수도원에 들어간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편지로 영적인 사랑을 나눴다. 1142년 아벨라르가 사망하자 엘로이즈는 시신을 거둬 매장하고 20여년 동안 그의 무덤을 지키다 숨을 거뒀다.

이 연인은 지금 페르라쉐즈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엘로이즈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유럽인들에게 널리 알려 졌다고 한다. 당시 몇몇 사람이 과장된 표현과 함께 쓴 연대기를 보면 이렇게 돼 있다.

“엘로이즈는 자기가 죽거든 아벨라르 무덤안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다. 그녀가 죽어 시신을 아벨라르 무덤으로 가져 갔을때 오래 전에 죽은 아벨라르가 팔을 올려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렇듯 애틋했던 연인 사이에 오갔던 편지를 모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서한'은 수도생활에 대한 중요한 문헌의 하나로 13세기 이래 널리 읽히고 있으며, 현재에 와서는 전설로 살아 남아 시, 소설, 회화, 영화, 연극 등 여러 예술 작품의 근원이 되어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들은 바라노니 / 차라리 연구, 재능, 애정, 불행한 결혼 그리고 개전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 / 이제는 한결 같은 축복 속에서 영원히 맺어지기를` (파리의 페르라셰즈에 있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비익총 묘비명)

 

중세 시대의 결혼관과 종교관.  육체적 쾌락이 죄악시되던 당시의 수도사들이 정부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요, 아이까지 출산하는 것이 그 당시의 공공연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신 중이던 엘로이즈는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형식으로 묶여지는 부부사이가 아닌, 사랑 자체로 결합되는 부부를 원했기 때문일까? 아님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을까?

관습과 인습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사랑을 버려야 하는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명예냐, 사랑이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의 잣대에 비난받아야 할 사랑은 완성(?)하기도 어려운가?  

 

자신의 삶을 파멸시킨 열정을 선택한 뒤 주저와 후회없이 그 길을 걸어갔다고 평가받은 엘로이즈, 나는 왜 지난날의 내 삶에서 후회와 회한을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