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왜 공부하는가"를 모르고 공부하는 것을
시지프스의 형벌로 비유하고 있다.
무익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노동이라고.
부모가 이 물음에 논리적으로 대답해 줄 수 있다면
아이는 스스로 공부의 동기를 만들어 낼거라고 한다.
-한 사람의 미래에 유효한 능력이란
"이해력""상상력""표현력"세 가지이다.
수학이나 외국어,역사,자연계 과목등 다양한 장르,
요컨대 각기 다른 관점과 각도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워 이 세가지 힘을
기르는 것이 공부의 본질이다.-
세계사책을 읽고 이해하고 사건과 흐름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 이해력,독해력이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덧붙여서 사건이 미친 영향등을 생각해보면서 상상력이 길러지고
시험에서 이런 지식과 생각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 표현력이란다.
수학을 싫어한다해도 도전해본 경험은 무의미한게 아니라네.
교과서에 나온걸 이해하고-이해력-
상상력을 발휘하여 해법을 생각하고-상상력-
수식을 활용하여 답을 얻어내고 표현한다-표현력-
또한 역사의 연표같은 것은 암기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흐름을 읽어내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즉,공부는 이해라는 인풋과 표현이라는 아웃풋,그 사이를 이어주는 상상력
이 세 가지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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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힘은 다양하게 밀려드는 정보를 나의 관점과 사고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환경이나 흐름에 떠밀려서 선택하지 않게 되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다수가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거다.
환경을 선택할수는 없고 20살에 어떤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은 환경과 무수한 선택의 경험에 의한 선택이 되므로
결국 환경에 의해 선택하는 거지 자기 의지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주어진 대로 살아갈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자아를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한 순간엔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말고 이용하려고 했다한다.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발휘할 기회가 아주 적다는 사실을 애당초 의식하고 있으면
그렇게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다.
조금 벌어진 틈에 쐐기를 박고 힘껏 그것을 벌리면,
의지의 힘에서 비롯한 자신만의 흔적을 거기에 부어 넣을 수 있다.
불합리와 모호한 흐름에 몸을 맡겨버리면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작가는 대학에서 사르트르를 강독하는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90분 수업동안 16행을 나가는,1년에 40쪽밖에 읽지 못한 강의였는데
이 강의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글이 태어났느지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바다 아래 잠긴 방대한 사고를 유추하고 이해하는 것이 '읽는'행위라고 한다면,
'쓰는'행위는 그 반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물을 가능한 한 선명하게 생각하고 빙산 전체를 크게 키운다면,
자연히 얼음은 바다 위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것이 표현이 아닌가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갖지 못하거나 사물이나 현상을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언어는 우리의 내부에서 자연스런 작용을 거쳐 위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설령 위로 떠올랐다 하더라도 허접쓰레기가 되고 말 것이다.
바다 아래에 아무 내용이 없다면 빙산이 아니라 그냥 부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4장에서는 세계에 통용되는 논리를 말하는데
젤 인상깊게 기억에 남은 것이
아들의 교육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는, 남자는, 마초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마초는 힘만 쎈, 무게만 잡는 마초를 말함이 아니다.
마초의 극한은 페미니즘이란다.
-진실로 강한 아버지란 스스로 일어서고,남을 배려하며,위급할때는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
성으로 볼때 여성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지만
남성은 변화하기가 쉽다고,그냥 내버려두면 중성이 되기 쉽다고 한다.
남자애를 키우기 위해선 부모가 강한 의지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고
엄마는 여자애를 키우긴 쉽지만 남자를 잘 모르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아래서 키우라고 한다.
엄마의 영역인 안전하고 좁은 공간에서는
도전적인 성향을 펼치지도 못하고 자립심을 기르지도 못한다고 한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대목이었다.
아들넘,이제 나보다 머리하나가 더 있게 키우고보니
나름 잘 놀리고 씩씩하게 키웠다 싶었는데
언제나 내 울타리라는 한계안에서 아이를 키우지 않았나 반성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도전정신을 엄마의 안정성속에 묻게 하고
자꾸 스스로의 책임을 환경으로 돌리지 않나 걱정스럽다.
얼마전의 대화에선 존경하는 사람에 아빠는 제외란다.
왜냐? 넘 친하기 땜에.
그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했더만
흑,노자 란다.
웬 노자? 노자가 뭐라했는데? 노자의 어떤 점이 존경스러운데?
무위자연이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려 하지 않고.
헉! 그럼 백수네.거지네?
아들넘의 이런 답변에 며칠을 고민했다.
책과 경험의 너무 큰 차,삶과 유리된 지식.
이 아이를 세상에 던져야겠다 싶었다.
이젠 홀로서서 진정한 노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아빠를 마주보며 깨달을 수 있게끔.
결국 모든 공부는 스스로 서서, 땅에 두발을 단단하게 딛고 서서
자기가 속한 사회 역시나 단단하게 서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맺음말에서도 한마디 한다.
영어를 못하는게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없어서 못한다는...
영어를 일찍 가르치기 전에 모국어에 대한 이해와 작문능력을 키우라고 한다.
우리가 늘 얘기하는 인풋과 아웃풋이다.
인풋이 꽉 차도록 되어있으면 넘쳐서 저절로 아웃풋이 된다는 얘기겠다.
울 아들넘의 경우는 인풋이 제대로 안 되어있단 얘기다.
하나를 읽더라도 눈이 아니라 머리로 읽어야 하는데.
저자는 고딩때까지는 공부와 먼 생활을 하다가 졸업하고 2년후에나
작가가 되고싶어서 대학을 갔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픈 공부를 위해 대학을 갔으니
학점과 관계없이 듣고픈 강의를 듣고 열심히 공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고 보면 어떤 일에 책임감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선택하고 결정한 사람들이다.
고딩까지 공부 안하고 띵까띵까 논다면 나는 그 꼴을 봐줄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아이들을 홀로 서게 하기 위해선 그리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자꾸 아이에게서 나를 분리하려고 노력중이다.
이 책을 읽기전부터 막연히 그런 생각을 정리중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이다.
흑,- - 속의 글은 저자의 글을 고대로 옮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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