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우리말책·논술

flow : 소유냐 삶이냐

깊은샘1 2007. 10. 10. 00:46

지난번에 책목록을 올려놓고 잠시 후회를 했습니다.

마치 책읽은 것을 자랑하는 걸로 보여질까 해서요.

그 뒤에 영어책 목록을 올리려다 이 얘기를 먼저 하고 올려야 겠다 싶었지요.

어제부로 세 건의 큰 일을 해결하고나니 가뿐해져서 씁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게을러서 몸 움직이는 걸 싫어했습니다.

집 어딘가의 구석탱이서 책 읽거나 잠 자는걸 좋아했지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밖으로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책은 많이 읽었는데

어찌된게 고전이라고 붙은 것중 안 읽은 것들도 꽤 되고

혹,고전에는 속하나 남들이 많이 안 읽은 책에 감명받은 것들도 있습니다.

만화방에서 만화책 읽는거에 한 2년정도 빠져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만화는 좋아는 하지만 그때처럼 즐기진 않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때 당시 대학생이던 고모가  제게 영향을 많이 미쳤는데요.

울 고모가 그때 에리히 프롬이나 불교쪽 얘기를 많이 해주어서

저도 자연스레 에리히 프롬의 책들을 즐겨 읽기 시작했고

대학생때는 불교 관련서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만 집착하지 않는 삶,무소유,무욕의 삶들을 꿈꿨었지요.

입으로도 그런 이론들을 떠들었구요.

 

그런데 저를 후려치는 사건이 두가지가 있었지요.

여름에 샤이님을 만나서 한 얘기기도 한데요.

첫번째는 카쟌차키스를 만난 일입니다.

우연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충격을 받았었지요.

두번째는 남편과의 만남입니다.

 

저희는 한동네에 살면서 저는 남편을 모르고 남편은 저를 아는 사이였다가

대학 1학년때부터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남편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제가 가까워지자 남편을 구속하려 했나봅니다.-

그때 들은 말이 거의 에리히 프롬의 책에 나온 구절과 같은 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는 식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나요.

죽도록 사랑한다 이런것도 사랑이 아니라고,내가 있어야 사랑을 하지 뭐 이런 말도...

에구 이넘의 기억력....

이 남자가 한 말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말이 그때 제가 달달 외도록 읽던

에리히 프롬의 책에 나온 말과 똑같아서 놀랬고

놀랄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울 남표니가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요즘 아들과 얘기하는 걸로 보면 중딩시절엔

괴테나 혹은 우리 근현대 문학책들은 좀 읽었던 걸로 보이지만

고딩이 되면서는 무협의 길로 완전히 들어서서

대학교,지금까지 읽은 무협지가 거의 3,4만권에 이를 거란 자신의 계산입니다.ㅋ

그리고 또 만화광입니다.^^

저랑 연애하던 당시는 셤전날에도 나이트클럽서 놀다왔단 얘기,

친구들이랑 고스톱치고 당구치고 만화보고

셤공부를 초치기로 했다,책상에 컨닝페이퍼를 썼다

맨 이런 야그만 하던 사람이랍니다.

어릴때도 동네길바닥에서 하루 종일 놀던,잘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이지요.

언젠가 누가 술도 못먹고 뭔 재미로 사냐고 물으니

혼자는 만화보고 둘이 있으면 당구치고 셋이면 고스톱 치고

넷이면 카드치고 논다는 사람입니다.ㅋ

그런 사람에게서 유명한 학자의 말이 나왓으니 놀랬었지요.

그 말이 저처럼 책을 달달 외는 말이 아니라

순전히 이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어우러져 나온 말이었으니 더구나요.

갑자기 저는 그 앞에서 무쟈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떠들던 이론들은 그저 죽은 지식에 불과했던 때문입니다.

책속에서 읽은 것들을 입으로 외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나 남편의 말은 그 말과 생각,행동이 일치되는 것이었지요.

제가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이라는 틀에 저를 가두고

고상한척,유식한 척을 있는대로 한껏 했는데

울 남표니나 조르바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솔직하고 당당했지요.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답니다.

그 이후에도 제 남편의 자체적인 생각들로 제가 깜짝 놀란일들이 몇번 있었고.

덕분에 책보다는 경험이 우선이란걸 깨달았지요.

 

 울 아들넘들,둘 다 책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어릴때부터 저는 노는게 먼저라고 했습니다.

아이에게도 누누히 얘기하곤 햇지요.

엄마가 책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책이 재미있으니까 읽히긴 하지만

책보다는 사람이 먼저고,경험이 먼저고 책은 그 다음이라고 말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에 와서 드는 생각은

아이의 나이와 이 아이가 한 경험에 걸맞지 않는 책들을 넘 많이 읽었단 생각입니다.

책 많이 읽힌게 오히려 아이에게 어떤 틀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머리에 먹물들었다는  표현이 생각되곤 합니다.

책을 이리 읽히려면은 그만큼의 경험을 쌓게 해야했던 것을

그저 잘놀고 다니고 학원 안보내는 걸로 만족하곤 했지요.

제가 겁이 많은 편이라 아이들이 어찌 될까봐 늘 동동 거렸었는데

자꾸 혼자 서게 해야겠단 생각을 부쩍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보고 깨져도 보고

혼자 자기가 원하는것을 찾고 그걸 얻기 위한 노력도 해보고 하는 과정을

좀더 많이 겪게 하고 싶습니다.

 

요 며칠도 그런 과정을 겪어내게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아들넘에게 "울 엄마가 점점 사악해지고 있어~~~"라는 외침도 들었습니다.ㅎ

 

제가 하고픈 얘기가 뭔 얘긴지 아시겠지요?

책도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젤 중요한 것은 몸으로 부딪혀서 깨치는것,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 생각을 갖는것,

그리고 뭣보다도 중요한것은 사람을 소중히 할 줄 아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먼저가 되지않고 책이 먼저가 되면

테레비속에서 떠드는 그 잘난척하는 사람들이 될뿐이지요^^

 

결혼 후 여늬 여자들이 그렇듯

제 삶도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아이들이 태어난 것도 그중 하나구요.^^

그러면서 불교의 수행이 뭐 다른게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전엔 글로 말로만 했던 거라면 지금은 절절히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도를 찾아서 굳이 절로 산으로 들어갈 일이 있나

사는게 수행이고 사는게 도 닦는 거란 생각을 합니다.

책속의 글자들이 살아서 내것이 되는 느낌도 전보다 많이 갖곤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른것도 경험하셨지요?

 

제가 책 목록을 올리는 이유는

너무 막막할 경우를 위해 도움이 될까 하는 맘일뿐입니다.

저도 어떤 목록이든 그저 참고만 될뿐

제 아이의 특성대로 읽을 뿐이더라구요.

그러니 제가 올리는 것들도 여러분은 참고만 하시고

여러분의 목록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저에게 가을은 놀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오히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왕성하게 책을 읽고

가을은 맘껏 돌아다니지요.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책속에만 코를 박고 계시렵니까?

밑에 책소개 올리신 깊은샘님 지송혀요^^ 이쁘게 봐주세유~

 

개인적인 남편 이야기도 들어가고

저를 아시는 분들이 아휴 또 닭살이다 하실깨비

임시보관함에 담아만 뒀다가는 걍 올립니다.ㅋㅋ 넘 흉 보지 마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