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우리말책·논술

사라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아련함. 그림책은 시.공간의 소통이다.

깊은샘1 2007. 4. 1. 22:10
2007.03.07 10:27

 나의 사직동 / 김서정. 한성욱 /                            

     

 내용                            
서울 한복판 광화문 바로 옆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있었다. 새문안교회 옆 골목길로 접어들어 십 분쯤 걸으면 나오는 동네. 자그마한 한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사직동에서 나는 태어나 자랐고, 학교에 다녔다. 우리 동네에는 친구들과 뛰어놀 골목도, 앉아 쉴 나무 그늘도 많았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분들도 많았다. 나를 볼 때마다 엄마 어릴 적과 똑같다며 웃던 정미네 할머니, 날마다 골목길에 온갖 채소를 펴 놓고 말리던 나물 할머니, 동네 할머니들 파마를 공짜로 해 주던 파마 아줌마, 사악사악 골목길을 비질하던 스마일 아저씨. 모두 동네 터줏대감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현수막이 붙고 동네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개발을 한다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터라, 조금은 들뜨기도 했다.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친구들과 계단을 뛰어오르고 인형놀이를 하고 감나무에 돌멩이를 던지는 동안, 못 보던 간판들이 하나씩 늘고 동네는 슬금슬금 달라졌다. 한 집 두 집 이사 가는 집이 늘고, 우리도 이사를 했다. 태어나 처음 하는 이사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사직동으로 돌아와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사직동 129번지가 아니라 모닝팰리스 103동 801호이다. 단지 안 길은 널찍하고 분수가 춤추는 작은 공원도 있다. 하지만 팽이 돌리고 인형놀이 하는 아이들은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싹싹 비질하는 사람은 제복 입은 청소 아줌마이다. 옛날 동네 사람들은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는 없다.

 

공간은 인간에게 선험적인 것이다. 그러나 공간에 경험이 결부되면 이제 저마다 독특한 시공간인 장소가 된다. 공간은 누구에게나 추상적이고 보편적이지만 장소는 그렇지 않다. 장소는 시간적 경험인 삶과 함께 인식되므로 저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들에게 가장 의미깊은 장소는 어디일까? 어릴 때 살던 집, 어릴때 살던 동네는 혹 아닐까?

어린 시절의 집과 동네는 추억속에서 언제까지나 사랑의 빛으로 물드는 공간이 아닐까 한다. 바로 이런 공간을 복원한 그림책이 < 나의 사직동 >이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영산강 물이 흐르고 목포 바닷물과 만나는 만에 자리한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수영선수 처럼 물에서 놀고 물고기와 조개를 잡으며 지냈다. 어린 내 친구들도 모두 학교가 끝나면 맨 먼저 강으로 달려가 수영을 하며 조개를 잡고 놀았다.

그 시절의 강에서 나던 모든것들은 어찌 그리 맛있었는지. 지금은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서일까? 아님 내 고향에서 난 것이 아니어서 일까?

 

지금은 하구둑이 생겨서 내 고향마을의 강은 모두 간척지로 변했다. 도회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처녀시절을 보내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

어린시절 보냈던 그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정경만이 마음에 남아 있는 내 고향마을. 왜 이리 그립고 아련할까?   개발은 추억도 가슴 아프게 만든다.

 

이 그림책은 도시 재개발과정에서 사라져간 자신의 집과 동네의 모습을 아이의 눈으로 보고, 아이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지나간 몇 년 동안의 일을 돌이켜보고 있는데, 기억과 추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듯 사진을 변형시킨 사실적인 그림과 색채를 제한적으로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살던 집과 동네가 완전히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잘 표현한 책이다.

 

알베르또와 나는 내가 나고 자랐던 고향마을을 자전거로 돌아 보며 나의 어린시절을 이야기 해 주었는데,

‘엄마는 공부는 별로 하지 않고 그리 많이 놀았는데 나한테는 왜 공부만 하라고 해? 나도 자유롭게 놀고 싶다.’ 한다. 머쓱해진 나, 그냥 아이를 쳐다 보고 말았다.

 

삶이 담긴 장소가 변해도 아직은 삶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있어 고향이라 불릴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