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종교적 관념과 세상 사이의 소통에 어려움이 많은 저에게 칼 융은 제 자신의 영혼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게 한 만남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요?
신의 세계를 제 나름의 방법으로 들여다 보게 해준 그리고 그것의 뒷받침(합리화)된 이론의 근간이 되었다고나 할까요!!!.(개똥철학)
칼 융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이유로 자서전 출간을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은후 출간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동의하였는데, 자신이 죽은 후에 책을 내야 한다고 고집한 것은< 필요한 간격과 냉정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라 여겼기 때문이랍니다. 그 조건대로 칼 융이 죽은 다음해에 자서전이 출간되었습니다. 요즘 어떤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 생전에 자서전들을 내는 풍조가 넘쳐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보면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일입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저의 10대 이후의 삶은 종교의 세계와 세상의 기존 규율에 대한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분야를 망라한 책읽기와 종교적 내재성으로 인한 갈등은 ‘칼 융’을 만남으로써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서로의 만남이었다고 할까요?
왜냐고요?
칼 융이야 말로 일생 동안 정신의 문제와 씨름을 했던 것은 바로 신의 문제와 씨름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칼 융이 죽기 2년전 BBC 방송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자가 칼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나는 신을 압니다.>였는데, 믿느냐고 물었는데 안다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어쩌면 아는 만큼만 믿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는지...
칼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마디로 규정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일생은 무의식의 자아실현의 이야기이다.’
일생동안 <꿈 일기>를 써온 칼 융으로서는 충분한 말일듯 합니다.
저는 칼 융의 행동지침 중 이 모습이 가장 와 닿습니다.
<병든 의사만이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질병에 감염될 정도로 그들의 실존에 동참하는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랜동안 방랑과 방황의 생활이었던 제 삶에 중심을 잡아 준 칼 융.
그 어떤 자서전 보다,그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위대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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