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시간짜리 논술직무연수를 받았다.
논술을 어떻게 풀어가야할지에 대해서 관심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외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연수일이 다가오니,
"어휴, 왜 내가 이걸 신청했을까?"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집에 혼자 남겨두어야 하는 리키때문이기도 하고,
몇 백명씩 교육청 대강당에서 하는 연수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해서 그랬다.(소규모로 �p샵을 하면서 해야할 연수인데 대규모 강의로 될까? 그저 생색내기 연수에 동원되는 구나...하는 맘도 강했다.)
첫 날, 수원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들었다.
제일 먼저 기조연설을 하신 교대 의 국어교육과 교수님(?)은 오로지 말로만 강의를 하셨다.
(우리 같은 과학과에게는 이런 강의는 참 낯설다. 우린 주로 시각 자료를 함께 활용하며 이야기 하지 이렇게 말로만 강의를 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만 하시는 강의에 나는 울림을 느꼈고, 기쁨을 느꼈다.
웬지, 이 연수가 행복할 것 같았다.
이 날, 강의의 주제는 "논술, 학교에선 논술 하지 마라." 이거였다.
둘째 날, 경기도의 4개 교육청에서 각각 200명씩 모여 강의를 듣는다.
첫 강의는 초등학교 선생님(김영주 선생님이시다. 아이들 동화를 쓰시는 분...우리집에도 이 분의 책이 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분도 내가 엄청나게 관심을 갖고 리키를 보내고 싶어했던 그 남한산 초등학교의 설립멤버였다.)의 강의였다. 중학교 샘들 연수에 웬 초등학교 샘? 했지만...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분은 아이들의 수업을 우선 "몸으로 겪기"부터 실천하고 계셨다. 글이나 그림이나 모든 창작물은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겪은 이후에야 정말 생생한 느낌, 창의성이 나온다고 말씀하신다. (그래, 바로 이거야)
오후 강의부터는 인문 사회전공과 수리, 과학계열로 나뉘어 연수를 받았다. 거의 대부분이 인문 사회 계열의 샘들이시라, 과학과는 7명, 수학과는 8명...뿐이었다. 정말 아주 단란한 분위기의 웍샵이 이루어진 셈이다. 오후 강의에 오신 샘의 말씀은 고3에서 논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의 90%는 다 초, 중학교 샘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수업방식처럼 직접 체험하고, 표현하는 수업방식이 아이들이 논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고...문제는 고등학교라고...
셋째 날, 계속 분반 수업이다. 오늘 수업을 담당하신 샘은 학부모들의 움직임, 논술의 역사적 변천 시대적 상황, 국가 차원의 노력, 외국의 움직임과 방향 등을 들어, 작은 세상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시선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나로서는 작년 사절학에 가입하고 샘님들을 만나고 하면서부터 학부모들의 움직임, 그 맘들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넷째 날, 다섯째 날...강사들은 거의 모두 내또래의 10여년 정도 된 샘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이 강사들 대부분은 전교조(전국 **교사모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이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연수에 주로 강사로 초빙되는 사람들이 전교조라...일부 관리자들이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일부 언론에선 전교조가 교육개혁의 걸림돌인것 마냥 이야기 하는데...수업방법의 개혁과 지속적인 실천을 이야기 하는 연수에 초빙되는 사람들은 역시 전교조 샘들이라는 건가? 후후... 나는 속으로 빙그레 미소지었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수업 방식, 책 읽기를 강조하여 실천하는 선생님의 수업, 생활 속의 작은 글쓰기를 하는 수업, 그림이라는 결과물보단,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사고과정을 긴밀하게 교류하는 걸레 미술선생님의 엄청난 작업의 결과물들까지...그런데 이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우리는 논술을 위한 책읽기, 글쓰기는 하지 말자고,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목표 그대로, 생애의 독자를 기르기 위한 행복한 책읽기, 생활 속의 글쓰기, 창의성을 신장시키는 다양한 사고과정을 훈련시키자고, 외부의 논술 열풍에 교육의 주체인 우리 교사들이 그 바람에 흔들리면 되겠냐고...
본질을 가르치는 교육, 이것을 넘어서지 말자고, 오히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질을 위한 교육을 더욱 충실하게 하자고, 다만 방법을 조금 바꿔서 더욱 많이 아이들의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고 말씀하신다. 넓게 보고 멀리 보자고...
아이들에게 저 먼 바다를 항해하라고 배를 만들어주지 말고, 배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를 꿈꾸게 하고, 바다로 나가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켜 주라고, 열망이 있으면, 배를 만드는 방법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터득할 것이고, 직접 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방법론 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맘에 와 닿는다. 매 순간 아이들이 갖추어야 할 능력을 그 시기에 튼튼히 밟지 않고, 나중에 사다리를 탈 것인가? 매일 매일 꾸준히 작은 걸음으로 나가서 충분히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것인가?
그래...역시 교육청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논술 연수가 맞구나...내가 외부의 다른 곳에 가서 논술 연수를 받았다면 난 단지 방법론만 익히고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수는 마인드를 곧게 세우는 연수였다. 방법론은 내가 좀 더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터득하고 뜻이 맞는 교사들끼리 교류하면서 진화시켜 나갈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 교사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지식공동체라고...
연수를 듣고 나니 나 개인적으론 또 다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릴 적 리키를 키우는 나의 생각의 제 1순위는 자연 속에서 느끼는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어릴적에 직접 체험 보다는 책을 통한 간접체험만을 하며 자라서 나 스스로 그 한계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체험을 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책을 읽고(이것도 맘으로 느끼면서 읽고), 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자신의 사고방식과 연결시켜 유기적으로 구성할 줄 아는 사고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름 그렇게 키워왔었다.
그런데 영어를 시키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하루 중에 영어에 쏟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가 기존에 틈날때마다 하던 만들기나, 그림그리기, 나와 함께 가끔씩 하던 실험들...이런 것들이 뒷전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물론 영어로 되어 있는 책을 읽는 것도 아이의 사고력에 분명한 도움을 줄 것이다. 더구나, 어휘보다는 그 내용에 더 집중하고, 그림에 더 집중하는 우리 아이의 경우엔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밖에 나가 뛰어노는 시간은 여지없이 줄어들고, 집에서 매일 정해져 있는 공부(?)를 하고 오후엔 학원엘 가느라고 반아이가 같이 놀자고 해도 나가지도 못하는 걸 본다. 아이의 경험의 폭을 내가 제한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주말에 내가 데리고 가는 전시회? 체험학습? 이런 것도 사실은 다 내가 의도한 바대로 제공하는 경험이 아닌가? 우리 아이의 주체성과 자발성은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영어라는 외국어 의사소통 도구를 익히느라, 우리 아이는 직접적인 경험을 해야 할 시간을 희생하는건 아닐까? 근육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하여 교육시켜야 할 것들...바른 글씨쓰기, 운동하기, 생활습관...이런 것들을 제대로 정착시키지도 못한 채, 혹시나 사상누각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오랫만에 본질적인 고민을 다시금 하게 해 준 연수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나와 함께 연수를 받으신 선배샘이 나에게 충고하신다.
내년엔 집 바로 앞에 있는 학교로 가서 이렇게 방학 때 연수도 받을 생각하지 말고, 학교 끝난 이후에도 남아서 일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에게 집중해 주라고, 앞으로 딱 5년간만 하라고, 중2까지 뒤를 지켜주면 그 이후는 혼자서 간다고...남의 자식 키우느라 내 자식 잘못되면 아무리 아이들 잘 가르쳐도, 내가 출세해도, 그만한 후회가 없다고...그래야겠지요? 하면서 듣다가도...내가 밖으로 나가 배우지 않으면 나는 썩을 거라고, 엄마가 교사가 썩으면 내 아이에게도 남의 아이에게도 좋을 건 없는거야...이런 생각이 맘 속에서 불끈 솟아오른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물어본다. 엄만 이런 게 갈등이 돼...넌 어떠니?
조금 후에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대답, "난,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
선배맘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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