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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평화 : FRC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 후기

깊은샘1 2007. 11. 19. 20:31

느리고평화네가 그래도 끈질기게 해 온 것 중 하나가 FRC(Fun Reading Club)입니다. 매월 1회씩, 2006년 8월부터 시작해 2007년 10월 말에 12번째를 진행하며 1주년 자축회도 가졌었답니다. 여기 계신 새미네 학교 식구분들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축하메세지를 남겨주셨었지요. 늦게나마 여기서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12번째 FRC 후기를 감사의 떡 대신에 올립니다. 제 블로그에 제 멋대로 쓴 글이니 감안하고 봐주셔요. 존대말이 아님을 거듭 미안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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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27 토요일 12번째 FRC의 진수성찬은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그 유명한 '뉴베리상'을 수상한

미국인이자 한국인이 린다 수 박의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

 중이미지보기중이미지보기 린다 수 박 지음/ 권영미 역/ 이형진 그림/서울문화사

 

이번 책은 록군동생이 뽑았다. 그러잖아도 린다 수 박의 작품을 한번 하고 싶었는데, 어찌 아그들이 이리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지...이진전심, 고맙다.

 

한국인 부모를 둔 미국인으로서 일리노이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린다 수 박은 고려시대(더 이전인가?) 도공의 이야기를 쓴 <사금파리 한 조각>에 이어 더 아래 시대로 훑어내려와 일제강점기 10대 남매가 겪은 이 이야기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를 썼다 한다. 주인공인 순희와 오빠 태열의 화자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처음 접해봤는데 이러한 형식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화자의 입장을 충분히 드러내므로 익숙해지기만 하면 입체적 재구성, 상상력의 가지 뻗치기에 좋다. 아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방식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듯했다. 영어로 쓰인 원문에서는 어떻게 그 뉘앙스를 나타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옮긴이는 순희의 이야기에서는 존대말로, 오빠 태열의 장들에서는 경어를 쓰지 않아 화자의 느낌을 좀 더 살렸다. 영문학과 출신인 록군모는 번역하면서 뭔가 매끄럽지 않은 게 많이 느껴졌다했다.

 

선정자인 록군동생이 작가소개를 하지 않겠다하여(부끄러워서) 내가 간단히 소개를 했는데, 남편이 중간에 위층에 올라가 인터넷검색을 해보고 와서 좀 더 상세히 소개를 해주었다. 신기한 건, 시끌시끌 자기 얘기하기에 바쁘던 아이들이 엄마들이 뭔가를 얘기할 때와는 달리 아빠의 이야기에 완전 집중해서 잘 듣더라는 것.

 

책과 저자에 대한 소개 후, 이 소설의 형식(화자별 진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전쟁의 위기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지? 라는 물음을 던졌다.

 

줄리: 은행에 있는 돈을 전부 찾아서 쌀을 사야해요.

       전쟁의 상황이 되면, 돈은 가치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쌀을 사야하거든요.

록군: 아니, 몽땅 금을 사야 해요. 

 

쌀이냐 금이냐로 공방이 오고가고, 또 전쟁이 발생해버리면 그 쌀이나 금이라는 것도 별 소용이 없지 않느냐는 엄마들의 물음에 아이들은 돈을 찾아서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야된다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순희나 태열이 빼앗긴 게 뭐냐, 우리말 이름외에 뭐가 있었을까, 지키고자 했던 몇가지가 있는데 그게 뭐지? 라는 물음에(역시 약간의 퀴즈형식을 띠니 아이들이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이름", "우리말", "무궁화나무", "태극기" 라고 소리높여 외쳤다.

 

그래? 그러면 말은 왜 지켜야하지? 하고 되묻자, "말은 우리 정신이에요", "말은 빼앗기면 다 빼앗기는 거잖아요."

 

자, 마지막으로 '1분안에 태극기 그리기' 해보자.

아, 태극원을 어떻게 나누더라? 4괘는 순서가 어떻게 되지? 궁시렁궁시렁, 고개를 갸우뚱해가며 그린 결과는 이랬다. 건,곤,감,이 (3.4,5,6개의 작대기)가 건과 이는 제대로 그리는데 곤과 감의 위치가 틀리기도 하고, 의외로 태극원의 빨강(양)과 파랑(음)을 나누는 곡선이 거꾸로 된 경우도 있었다.

 

나? 나는 물론 제대로 그렸지~~ 왜냐? 예전에 너무 헷갈려서 몇번 연습하고 확실히 기억해두었거든.

 

이 책에서 내가 느꼈던 건,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에서와 같이 주인공 여성이 외국어 습득에 뛰어났다는 것(바리데기의 바리가 중국어, 순희인 교코는 일본어 습득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과 그 능력이 주인공이 힘든 세월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장한수였나 그 사람도 그랬고...

 

순희의 교코라는 이름은 저자인 린다 수 박의 외할머니가 일제치하에서 가졌던 일본이름이고, 태열의 일본이름도 그런 사연을 갖고 있다했다. 어릴적 부모와 그 윗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걸 토대로 자료조사를 해서 재구성한 이 책을 읽으며, 어릴 때 알게 모르게 구전되는 그 자양분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아이들을 위해 쓴 책이라는데 이번에도 난 가슴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다음 번 책은 <빨간 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