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샘물고등수다방

아기파파 :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깊은샘1 2007. 10. 18. 09:13

아래 글까지가 다른 사이트에 쓴 것입니다. 앞으로는 각각 다르게 써볼 생각입니다(너무 믿진 마세요. 쓰는 시간도 장담 못합니다.). 그래봐야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요. 여기서는 좀 더 차분히 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앞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불과 며칠 지났는데도 변화가 많습니다. 일단 수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질적 성장'을 자주 생각했어요. 저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하는 거죠. 무슨 말인지는 차츰 이야기하구요, 어쨌든 그런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이 깔려있어야 하더군요. 꼭 책이나 공부가 아니더라도 뭔 생각이라도 쌓여있어야죠. 요즘 이 놈이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느긋하다는 제가 보더라도 '얘, 고등학생 맞아?'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다보면 실패도 많이 하겠지요. 어쨌든 스스로 느낄 때가 가장 좋은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써놓았던 글입니다. 조금 덧붙였어요.

 

요즘 시간이 많습니다. 일터를 옮기느라구요. 책(독서)와 관련된 일을 할 예정입니다. 책과 함께(아이 말로는 책은 읽지 않으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아빠랍니다. 아는 척만 한다는 거지요.) 지내온 것이 7년이 되었네요. 살다보니 이렇게 인생이 변하는군요. 돈은 얼마되지 않지만, 남은 삶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기쁘구요. 무엇보다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다행입니다. 이제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거든요. 가족 모두 좋아합니다.

 

지난 번에 모의고사 이야기를 했는데요. 교내 시험을 제외하고 본격시험은 처음인지라 아이나 저나 사실 어리둥절했습니다. 결과를 받아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네요. 잠 자거나 딴짓한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언어, 영어를 제외하고는 점수가 다 틀립니다. 보통 시험보면 그 내용에 대해 술술 다 이야기하는 아이인데, 지가 뭘 마킹했는지도 모르네요. 그래도 그 점수에 등급(2,3등급)받은 걸 보면 이해가 가지 않네요. 수학은 5등급이구요. 내용을 보아하니 수학은 1등급을 무난히 받을 실력이라고 봅니다. 아마 이번 점수가 최악의 기록이 되겠네요.

 

문제는 언어와 영어인데요. 첨에는 믿기 어렵더라구요. 전에 어느 분께서 모의고사표를 올려주셨을 때는 그 숫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이번에 보니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금방 알 수 있더라구요. 언어는 99.9%, 영어는 99.53% 영어는 만점자(2500명 정도)가 많았다는 거더군요. 그런데 언어에서 두 개나 틀렸다고 해서 다음에 좀 잘보라고 했거든요. 국어시간에도 선생님이 야단치실까봐 긴장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웃는 낯으로 들어오셔서 '네가 파주에서 언어영역 1등이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선생님들 끼리 정보교류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시험에 대해 모르기도 했지만 이런 결과까지 나오리라고는 다소 난감하네요. 언어와 영어를 합한 점수로는 99.97%, 오십사만여명 중에서 160등 이내더군요. 다음에도 이런 점수가 나올지 모르지만 믿어야 할 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너무 잘 나와 앞으로가 걱정이네요.). 전에 말했던 것처럼 공백도 공백이려니와 중학교 때 국어문제집 하나 변변히 없었거든요.

 

초등부모님들, 아이가 책 많이 읽도록 하세요. 점수가 따라옵니다. ^.^;;; 나이가 들면 어려워요. 대한민국에서 책 읽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들 아실 거에요. 책을 의무적으로 읽자는 게 아니라는 건 아시죠? 푹 빠지는 경험을 통해 습관을 길러줘야 하는 거죠.

 

점수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앞으로 거의 1등급을 받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사회, 과학도 잘 하거든요. 그래서 어제 대학 입시에 대해 좀 알아보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내신, 수능, 논술, 면접으로 되어있더군요. 이 정도라면 한국대학에 원서를 넣고 미국대학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더군요. 아직 시험을 한번도 보지 않았지만, 내신이라면 1등급(다른 아이들과 격차가 사실 많거든요)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논술, 면접도 별 문제 없어보이구요. 뭔가를 새로이 준비한다면 이중의 부담이 되겠지만, 특별히 그런 게 없어보입니다. 특히 수시는 수능에 대한 부담도 덜 하구요. 미국대학이 리버럴 아트 칼리지 같은 경우에는 장학금이 많긴 한데, 사람 일을 100% 보장할 순 없겠지요. 우리야 전액 장학금이 아니면 꿈도 못꾸니까요. 주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담임선생님을 만나볼까 합니다. 주로 고3 담임을 하셨던 분이라 하더군요. 입시에 대해 잘 모르니 상담을 받으면 구체적인 길이 열릴 듯 합니다. - 가진 않았어요. 일단 내버려두자는 생각에서죠. -

 

원래는 교육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이의 지나온 과정 순으로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교육에 대한 생각은 별게 아니더군요. 혼자서 중얼거리는 수준을 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순서를 바꿔 써보겠습니다. 마지막에 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구요.

 

지금 보니 교육사이트에 가입한 것이 2001. 6월이네요. 그 때 정말 신이 나서 글을 올리고 했습니다. 당시 했던 것과 중복되는 게 많겠지만 오늘의 시각에서 좀 더듬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전 아이와 항상 같이 있는 게 아니라서 이번 글을 쓰면서 아내에게 많이 물어봤습니다. 기억에 틀린 부분도 많더군요.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아빠보다 더 못했을 거에요. 아이를 위해 뭐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더우기 교육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왔구요. 초3 여름방학의 어느 날까지는 그랬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구요. 아이를 부모님께서 키우다시피 하셨거든요. 맞벌이부부라서요. 좀 놀아주고, 하여간 쓸 만한 게 전혀 없습니다. 다른 아빠들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 한 것은 없었을 겁니다. 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전혀 없구요. 다른 분들이 교육에 그렇게 열심인 것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서도 한참을 지나서야 학원 보내고 하는 걸 보면서 정말 놀랐습니다(지금은 더 놀라고 있지요). 속된 말로 뒤집어졌지요. 전혀 공감하지는 못했지만요(정말 네버입니다.).

 

어린 시절이라... 4살 땐가 강원도 콘도에 놀러가 노래자랑 대회를 하는데, 유일하게 아이로 올라가서 '소양강 처녀'를 부른 것. 당시 동화책을 한 권 사주었더니 달달 외워서(할머니를 졸라서 매일 읽어달라고 했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글을 아는 줄 알았던 일. 얼마나 쓸 말이 없으면 이런 정도 기억하고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언어감각이 좀 있었구나.' 하지만, 이 정도의 아이는 흔하지 않을까요?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보고서 놀랐던 기억이 많으니까요.

 

딸을 보면서 의아한 것 중의 하나가 자랄수록 더 커간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아내도 그런 말을 하는데, 어릴 때는 그저그런 아이, 초등 때는 주변에서 똑똑하다는 소릴 듣는 아이, 중등 때는 지역에서 잘 한다는 아이, 고등 때는... 보통 유치원 때는 다 영재라는 말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반대인 셈이죠.

학습으로 본다면 윤선생영어를 1년 넘게 한 게 전부(정말 없었어요. 윤선생도 왜 그런 걸 했는지 모를 정도니까요. 아마 아이 엄마가 주위에서 하도 영어, 영어 하니까 시작했던 모양이에요.)였을 겁니다. 것도 엄마가 시켜서 했는데 전 별로 기억에 없어요. 가끔씩 눈에 띄면 '뭐 저런 걸로 애를 잡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아, 입학 전에 타자를 가르친 적은 있네요. 초등 저학년 때 상당히 잘 쳐서 선생님들의 업무를 보조한 적도 있습니다. 귀여움을 많이 받았네요.

 

교육, 돌이켜보면 참 우스운 계기(글을 쓰면서 항상 그 생각을 해요. 혹 누군가가 나처럼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금까지 글을 썼더랬어요. 그러다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요.)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는데 도서관에 어린이실을 개관한다고 플랭카드를 붙였더군요. 당시만 하더라도 어린이실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거든요. 지나가면서 '저런 곳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만가 지난 후에 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도서관에서 아파트를 순회하고 거기서 책을 2000권 가량 읽혔다는 엄마와 인터뷰를 하더군요. 그 때 '아!' 하고 머리에 꽂힌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온 거지요. 약 한 달여를 곰곰히 생각했습니다(이런 저런 생각을 참 많이 했더랬어요. 그래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 책을 읽도록 하자. 공부야 나중에 지가 알아서 할지 모르고, 남는 것은 책을 읽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식의 생각들이었지요.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상당히 어려웠습니다(기회가 있으면 나중에 말하고 싶은데, 정말 힘들었어요. 보통 엄마 혼자서 교육에 관심을 가진 분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교육은 엄마가 맡는다는 사회적 분위기라도 있는데, 그보다 몇 배는 어려웠죠.).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려웠거든요. 집안 분위기도 있고. 부모님이나 아내나 '너 일이나 열심히 해라.'는 반응은 불 보듯이 뻔했으니까요. 게다가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아내는 아내 대로 텔레비 보기에 바쁘구요. 집안에 들어서면 텔레비 소리가 빵빵 울렸습니다(전 소음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텔레비도 안 봅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지요. 그 전에 책이라고는 달랑 두 권 사준 아빠가 그런 걸 해보자고 하면 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몰랐구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윤선생을 끊고(상당기간 당근으로 써먹었습니다. 너 책 읽지 않으면 윤선생 다시 한다고. 그럼 아이가 기겁했어요. 나중에 캐나다에 있을 때 전화하면서 그 때 아빠가 영어를 끊고 책을 읽은 것은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고 하면서. 진실은 다른데, 아이들이 그렇게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 결심해서 한 일이 아니었지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어요. 아내도 공부를 거의 시키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피곤하니까),  이 말을 좋아했어요. 하던 하지 않던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부담은 다 있는 모양이에요. 지금 보면 너무 막연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공교육(특히 주입식교육)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손을 잡고 도서관에 다닌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거리가 좀 멀거든요. 그래서 당근을 주면서 어느 정도는 단호하게 강행하기로 했지요. 쓰다보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게, 아이에 대한 이해나 교육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책을 읽어보자는 결심 말고는... 집안이 발칵 뒤집혀졌다는 것보다 싸늘한 반응이었습니다. '저 인간이 아이한테 갑자기 왜 저러냐는, 저게 얼마나 갈까? 하는.' 그러다 나중에 엄마표 영어까지 겹치니 참 어이없다는 표정들이었죠. 이게 2년은 갔습니다. 집에서 왕따(돈벌이도 신통치 않으면서)였고, 아이 잡는다고 보통 잔소리 들은 게 아닙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아내에게 그랬죠. 공부하라고 하는 건 잡는 게 아니고, 책 읽자고 하는 게 왜 아이 잡는 거였냐고(남자가 교육이야기만 말만 꺼내도 쪼존하게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다느니, 아이 잡는다느니 - 그런 분들을 많이 보아서이지 않을까 싶지만 -, 심지어는 미쳤다느니, 그런 말을 주위에서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지금 그런 말 했던 분들 다 아이 잡고 계시더라구요.)? 아마도 그런 과정이 사회분위기로 보아 튀는 행동이다 보니 아내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5학년 말쯤 독서력이 눈에 띄게 늘어가니까 말이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더군요. '아,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면서요. 당시 아내는 '공부 못해 남들이 이해하지 않아도 좋아. 책을 열심히 읽는 걸 보면 참 기쁘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아이가 어떻게 책을 읽을까를 고민해 본 적도 별로 없구요. 아이들 책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무조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어린이도서관의 책(지금처럼 책이 많지는 않았습니다)을 다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구요. 아이와 상의(?)해서 하루에 세 권씩 읽어가기로 했지요. 그 정도는 읽겠다고 하더군요. 대신 책을 읽고나면 마음대로 놀기로 했구요. 처음 두세 번은 데리고 갔는데, 무조건 내가 아는 책을 권했지요. 다들 잘 아시지만, 톰 소여의 모험, 작은 아씨들 같은 어릴 때 읽어서 제목을 알고 있는 책들. 그 후에는 시간을 내어서 제가 가져다 주었구요. 독후활동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는데, 책을 읽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이를 살피게 되더라구요. 이게 아마 개똥철학이든 뭐든 제 교육관의 시작이지 싶습니다.

 

반응이 좋은 책, 좋지 않은 책이 있더군요. 술술 읽는 책이 있는가 하면 마지 못해 드는 책이 있구요. 읽어보자고는 했지만 출발이 순조롭지는 않았거든요. 아빠와 약속을 했으니 한 면이 많지요. 어쨌든 아이의 표정을 살피다보니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게 되더군요. 하루에 세 권인 것도 적은 양이 아니라서 제가 알고 있던 제목은 금방 동이 나 버렸구요. 뭘 읽어봐야 하나 고민하다보니 어린이도서연구회나 그런 쪽을 찾기도 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동 책에 대한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이 없던 어린 시절,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채워진 전집들, 엉터리 번역인 채 그냥 돈벌이를 위해 졸속으로 펴낸 책들. 할 수 없이 자꾸만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갖다주면 늘 하는 말이 있었지요. '아빠, 이 책 재미있어?' 내용을 설명하려면 몇 장이라도 들추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우스운 계기로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답니다. 고민하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모집 강의에도 나갔습니다. 시간을 겨우 내어서 찾아가니, 강의는 시작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에휴, 전부 50명이 넘는 듯한 강의장에 남자라고는 달랑 저 혼자였습니다. 강의는 받다말고 다들 쳐다보는데, 민망해서 혼났습니다. 그렇게 여성분들이 많은 곳에 서보기도 처음이었구요. 강의 마친 후 갑자기 다들 어떻게 오셨냐고 하면서 쭉 둘러서는데 동물원에 온 듯한 느낌이더라구요. 강의 후 회원으로 등록하는데 결국 못했습니다. 모임이 전부 오전에 있어서요.

 

혼자서 사이트도 열심히 뒤지고, 일산 동화나라(아동서점)라는 곳에 아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도서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도서관마다 북적거리지만 그 땐 저 혼자만 조용히 책을 고르고 있었지요. 대출 권수가 하루에 세 권인데 매일 그렇게 읽기로 했으니 고충이 많았습니다. 어떻게라도 짬을 내어서 책을 구하러 다녔어야 했으니 1년 여는 밥을 굶고 다녔습니다. 그냥 그게 좋았구요.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지금도 좋아서 해요. 그래서 '엄마가 너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해주었는데,'라는 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었으니까요.). 도서관에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 그 후 한 3년이 지났을 땐가요? 그 쯤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도서관직원들을 다 알게 되고, 나중에는 혼자가도 10권을 넘게 대출했지요.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있었구요. 제 잘난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구요, 아이 교육에도 어느 정도의 열정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썼습니다.

 

아무튼 아이를 보면서 사람, 아이,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취약점도 있었지요. 한 아이, 그 중에서도 조금 재능이 있는 아이(한참 지나서 그런 걸 느꼈지만요)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문제점도 많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썼던 부분이구요. 시간 나면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