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네 이야기/화이트린넨네

화이트린넨 : 큰 딸래미의 꿈 이야기

깊은샘1 2008. 2. 5. 02:27

오늘은 큰 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큰 딸이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습니다.

10시반에 식이 시작하는데,  대충 11시 쯤 오라해서  시간 맞춰 머리감고 옷입으려 하는데,  둘째가 하는 말이,  언니가 엄마 예쁘고 하고 오라했는데...

하네요.

귀찮아서  머리만 감고  그냥 갈까 하다가,  한 두어달 만에 화장을 하였습니다.

 

강당에서 식이 마치고,  모두 3학년 교실로 향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 교실을 둘러보다,  교실 게시판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울컥해서  눈물이 나와    선생님과 아이들이 오기 전에  교실밖으로 나갔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교실 뒤에 반 아이들이 써서 붙여놓은,  중학교 3학년의 생활을 앞 둔  "내가 나에게 주는 말" 이었는데요,

딸래미는 첫 문장에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라고 써 놓았더군요.

 

 

 

제가 저의 개인 블로그인 네이버와  다음 블로그 (거의 빈집이지만) 의 대문에 걸어놓은 문구랍니다.   집에서는 아이가 블로그의 글을 봤어도  별 반응이 없었거든요.

 

 

딸래미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인것 같아요.

 

교회에서 종이접기를 배워  집 근처의  모 정신병원으로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요양중인 아줌마 아저씨들을  2-3분씩 모둠을 지어   아이들이 종이접기를  가르쳐 주는 일이었구요,  찬송가도 부르고  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합니다.

 

처음엔 정신병원에 계신 사람들이라 해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데,  자기들을 보면서 너무 좋아하고, 즐거워서  아이들 처럼 소리내어 웃는 모습을 보면서,   무서운 마음이 사라지고,  다음에 꼭 또 오라는 말을 수차례 들으니,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날 이후,  아이의 마음속엔   "봉사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의사"가 되고싶다... 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이후,  학교에서 "나의 꿈" 이란 주제로 글쓰기를 하면,  항상 그 날의 얘기를 썼고, 중3이 된 지금에도  "나의 꿈"과 관련된 글을 쓰면  항상 얘기의 중심엔,  그 날의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예비고의 보충수업 첫날 본 영어시험 중  쓰기 시험에 나의꿈과 자기소개에서도 또 썼다고.^^:;)

 

제가,  어릴때나 지금이나  항상 같은 얘기를 하느냐... 하고 살짝 물어보면,   같은 얘기지만,  크면서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네요^^

 

또 한가지는,  전 아이들과 장래희망...직업... 뭐가 될까... 이런 얘기를 하면,  맹세코  단 한번도  어느 대학,   어떤 직업..을 거론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니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너무 행복해" 하며  "미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일에 몰입하다 보니   프로가 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산적인 직업으로 연결된다면   평생 즐겁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중학교 올라 온 이후로,  아이가 꿈에 대해 얘기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무엇인가에 미치는 모습도 별로 볼 수 없었구요.

미치도록 하고싶은 일이 없니... 라는 물음에도  특별한 것이 없었지요.

 

말만으로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그를 위해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특별한 일이 별로 없었기에,  전 늘 속으로  뚜렷한 꿈없어 보이는 큰 아이가 아쉬웠습니다.   아이에 대한 저의 고민의 많은 부분이 그것이었구요.

 

목표의식이 부족하니  늘 몇%가 부족한 것이구나...생각했지요.

 

사실 그런 문제로  딸아이와 가끔 언짢은 일도 있었는데, 아이는 특별히 자신을 변명하지도 않았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늘 딸아이가 써놓은 그 문구를 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표현을 할까요...

가슴벅찬 안도감이랄까요...

미안함도 있었구요... 그래.. 넌 너 나름대로 꿈을 그리고 있었구나...

 

나름의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키워 왔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의지를 다짐하고 있었구나...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비로소  딸아이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  학과,  하고싶은 일 (구체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해서  동생들, 특히 막내에게 자신이 해 주고 싶은 것 많이 해주고 싶다는 둥...    

마치 그간 꼭 꼭 쌓아놓았던  꿈 보따리를 쏟아 놓듯   얘기하더군요.

 

덧붙여  자신은  낮에 정해진 직업이 있어도  부업으로 "얼굴없는 가수"가 되고 싶답니다.^^:;

 

아이가 글 써서 붙여놓은 종이를  살~짝 떼어 왔습니다.

어짜피 새학기 되면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들인데,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거든요.

집에와서 쉬었다가  자기 방에 들어가  수학 문제 풀고 있는 딸래미의 뒷 모습에다가 많이 많이 소리없이 응원해 주고 나왔답니다.

(원래는 방 이지럽다고 소리 소리 질렀는데,  나오면서 슬쩍 웃었더니,  딸래미가 "엄마 웃지마" 합니다.)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작은 메모 하나가 오늘 참 행복하게 하네요.

 

딸래미 화이팅!